-
[Legned] 라울 마드리드, 라울 곤잘레스 블랑코유럽축구🇪🇺 2022. 5. 30. 15:29
'반지키스' 라울 곤잘레스
라울과 레알 마드리드
라울의 유소년기는 레알 마드리드가 아닌 지역 라이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시작이었다.
ATM에서 유소년기를 보내던 중 구단의 유소년 아카데미가 해체되면서 레알 마드리드로 입단하게 되었다.
레알 마드리드로써는 라이벌의 유소년 아카데미 해체가 16 시즌 동안 공격을 책임지는 선수를 얻는 행운이었다.
라울은 94/95시즌, 레알 사라고사와의 경기에서 성인 팀 데뷔를 이뤄냈다.
이때, 라울의 나이가 17세 4개월로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연소 출전 기록을 갱신했다.
라울은 성인 팀 두번째 경기인 ATM과의 경기에서 커리어 첫 득점을 기록하며 역사를 시작했다.
데뷔 시즌 리그 28경기에 나서 9 득점을 기록, 컵 대회 포함 30경기 10 득점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
레알 마드리드는 우승을 차지하며 라울이라는 유망주까지 얻은 시즌이었다.
라울은 꾸준하게 레알에서 활약하며 카펠로, 하인케스, 히딩크 감독 등 여러 감독을 경험했다.
레알의 지휘봉을 잡은 감독마다 라울은 빼놓을 수 없는 상징과도 같은 선수가 되었다.
레알 마드리드를 이끄는 라울
98/99시즌 25 득점으로 득점왕을 차지했고, 00/01 시즌에도 24 득점으로 득점왕을 차지하며 활약했다.
라울은 레알이 '갈락티고 정책'을 실행하며 지단, 베컴, 피구, 호나우두 등이 합류한 팀의 주장으로 활약했다.
01/02 시즌에는 리그 14득점을 포함, 시즌 55경기 29 득점을 기록하면서 레알의 성공가도를 이끌었다.
02/03시즌, 충수염으로 인한 결장 기간이 있었음에도 리그 16 득점, 챔스 9 득점 등 47경기 25 득점을 기록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리그 우승, 챔스 4강 등 성공적인 성과를 이뤄내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는 갈락티코 정책의 헛점이 드러나면서 라울의 활약도 함께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03/04시즌까지는 53경기 20 득점으로 활약했으나 이후 13득점, 7 득점 등 이전과 같은 폭발력은 보이지 못했다.
라울의 부활과 갈락티코 2기 출범 그리고 이별
이후, 레알마드리드가 팀을 재정비하면서 라울도 다시 한번 부활을 알렸다.
리그에서 18득점을 기록하며 부활을 알렸고 시즌 MVP를 수상하는 등 대외적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07/08 시즌에 이어진 08/09 시즌에도 리그 18 득점을 기록했지만 팀의 성적은 좋지 못했다.
'엘 클라시코 더비'의 상대팀인 바르셀로나에게 우승을 내주었고, 라울 혼자만의 힘을 팀을 이끌긴 어려웠다.
이에 레알 마드리드는 페레즈 회장을 재선임하고, 무리뉴 감독이 부임하면서 갈락티코 2기가 시작되었다.
호날두, 벤제마, 카카, 이과인 등 쟁쟁한 선수들이 다시 레알의 부흥기를 위해 합류하며 팀은 더욱 강해졌다.
갈락티코 2기에도 라울은 건재했고, 초반에는 라울의 파트너를 고심하는 정도로 라울의 입지는 공고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무리뉴 감독은 벤제마, 이과인을 주로 활약했고 자연스레 라울의 출전을 줄어들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 시즌에는 39경기 7 득점에 그칠 정도로 라울의 활약은 아쉬움이 남았다.
무리뉴 감독은 라울의 잔류를 원했으나 라울은 더 많이 뛸 수 있는 팀으로의 이적을 선택했다.
독일 무대에서 본인을 증명한 라울 곤잘레스
라울이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향한 곳은 독일 분데스리가의 샬케 04였다.
여전히 챔피언스리그에서 뛰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샬케가 라울을 원했다.
이적 초반 7경기에서 침묵하며 라울의 시대는 이대로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라울은 갈락티코 군단에서 2번이나 살아남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였다.
6라운드에서 데뷔골을 넣었고 13라운드 , 17라운드에서는 연이어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챔피언스리그도 조별예선 1위로 본선에 올랐고 포칼-컵도 우승을 차지하며 활약했다.
다만, 리그 성적은 14위로 부진했지만 라울에겐 생애 첫 국가 컵대회 우승이었고 샬케의 9년 만에 우승을 안겼다.
샬케에서 맞는 두 번째 11/12 시즌, 라울의 역할에는 변화가 찾아왔다.
이전 시즌 중반 부임한 랑닉 체제에선 라울은 스트라이커가 아닌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았다.
득점력과 체력에 대한 우려가 있었으나 47경기에서 21 득점을 기록하며 이전 시즌보다 좋은 기록을 남겼다.
샬케는 3위로 시즌을 마칠 수 있었고 DFL-슈퍼컵도 들어 올리며 성공적인 샬케에서의 활약을 마무리했다.
선수의 황혼기를 보낸 라울 곤잘레스
라울은 샬케와의 계약 종료 후, 카타르의 알 사드로 향했다.
1년 단기계약을 맺어 활약하며 34경기에 나서 12 득점을 기록하며 녹슬지 않은 득점 감각을 선보였다.
라울은 알 사드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카타르에서의 활약을 1년 더 연장하게 되었다.
알 사드 소속으로 레알 마드리드와의 친선 경기도 경험했지만 경기력은 이전과 같지 않았다.
(라울은 레알과의 친선경기에서 전반은 레알, 후반은 알 사드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었다.)
라울은 은퇴를 선언하며 친정팀 레알 마드리드에서 디렉터, 혹은 구단 스탭 역할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라울은 은퇴를 돌연 번복했고 미국 MLS의 뉴욕 코스모스 입단을 알렸다.
한 시즌 동안 32경기에 나서 9 득점을 기록하면서 라울은 선수로서의 활약을 마침내 끝냈다.
클럽 통산 932경기 388 득점
라울과 스페인 국가대표팀
클럽 커리어에 비해서 아쉽다는 평가를 받는 라울의 국가대표팀 경력이다.
라울은 1996년 19월 9일 체코와의 경기에서 성인 국가대표팀으로 데뷔했다.
이어진 유고슬라비아와의 3번째 경기에서 첫 득점을 신고하며 대표팀에서 활약을 시작했다.
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조별예선 3경기에 모두 출전했지만 예선 탈락의 아픔을 맛봤다.
커리어 기간 동안 유로 2000, 02 한일 월드컵, 유로 2004, 2006 독일 월드컵을 경험한 라울이었다.
하지만 라울은 대표팀에서는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2006년 9월 6일, 북아일랜드와의 경기 이후 라울은 스페인 대표팀에서 볼 수 없었다.
102경기 44 득점을 기록했으나 스페인 대표팀에서 라울의 모습은 아쉬움이 남았다.
대표팀 최다 출전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득점 순도 등 결정적 순간에서 번뜩이지 못했다.
44골 중 단 6 득점만이 주요 대회 본선에서 기록하면서 대표팀 커리어는 아쉬움이었다.
국가대표 통산 102경기 44 득점
챔피언스리그와 레알 마드리드의 상징 라울 곤잘레스
국가대표에서 성적은 아쉬움이라 할 수 있지만 라울은 큰 상징성을 지닌 선수였다.
라울은 챔피언스리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로 남아있다.
현재에는 호날두, 메시, 카시야스 등 라울이 세운 기록을 경신했지만 이전에는 라울이 세운 기록이었다.
142경기에 출전하면서 역대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고, 71 득점으로 최다 득점자에도 이름을 남겼다.
또한 유로파 기록을 합산, 유럽 대항전 랭킹도 77 득점으로 1위 자리에 오른 바 있다.
호날두가 '챔피언스리그의 사나이'라고 불리지만 이전에는 분명 라울이 존재했었다.
라울은 또한 레알 마드리드 그 자체로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16 시즌 동안 741경기에 나서 323 득점을 기록하면서 호날두 이전 최다 득점 기록자였다.
레알 마드리드가 갈락티코 정책을 시행했을 때에도 라울의 존재감은 거대했다.
득점이 줄었을지언정 플레이메이킹이나, 주장 역할에서 본인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했다.
레알의 팬들은 Raulnito, 마드리드의 천사, 라울 마드리드 등의 애칭으로 라울을 사랑했다.
728x90'유럽축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라운드를 떠나는 선수들(외질, 보얀, 아데바요르) (0) 2023.03.24 [유럽축구] 이적시장 주요 정리 (2) 2023.02.03 [21-22 La Liga] 23R 바르셀로나 vs ATM (3) 2022.02.07 [21-22 Serie A] 밀라노 더비 리뷰 (4) 2022.02.06 [유럽축구] 빅리그, 더비 결과 (런던, 엘클라시코, 데르비 디탈리아) (4) 2022.01.13